6월20일 소녀상농성이 2000일을 맞는다. 반일행동은 2015년 12월30일 소녀상에서 24시간 농성을 시작했다. 박근혜정부가 일본과의 한·일 위안부합의를 발표한지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 반일행동은 농성2000일을 맞아 SNS상 <소녀상농성2000일 챌린지>를 진행중이다. 소녀상지킴이들은 챌린지를 통해 <나에게 소녀상이란>, <나에게 지킴이들이란>, <나에게 소녀상농성이란> 질문을 던졌다. 챌린지에 참가함으로써 농성의 의의와 지킴이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생각해볼 기회를 얻는다. 소녀상농성을 하는 반일행동은 이제 반일투쟁의 심볼이다.
그렇다면 지킴이들에게 농성2000일은 어떻게 생각되고, 느껴질까? 반일뉴스는 소녀상2000일을 맞이하느라 분주한 반일행동을 만나 인터뷰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희망나비전국대표, 반일행동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지선입니다. 소녀상농성이 1년 됐을때 농성장을 처음 방문했고 그인연으로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자 이렇게 소녀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농성참여는 4년차네요.
시간이 너무 빨라요.
농성장엔 얼마나 자주 오나요?
매일 오거나, 일정이나 약속이 있으면 못해도 주3-4회는 옵니다.
누구보다 소녀상농성에 대해 잘 알것 같아요.
그래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농성장에 올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오나요?
가장 큰것은 어제도 하고 그제도 농성을 했으니까 오늘도 오는건 당연하다는 나태한 마음가짐을 경계하고, 소녀상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많이 생각해 봅니다. 단순히 농성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소녀상을 지키고 반일사안을 알아보려고 하면서 농성장에 옵니다. 오는 사람들에게 농성과 소녀상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소녀상에 대해 설명을 하겠어요.
맞아요. 코로나이전에는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수학여행 등으로 많이 와서 낮시간엔 설명하느라 바빴어요.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을 많이 못보는게 아쉬워요.
예전에는 학교에서 수행평가 과제로 학생들을 보내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가요?
대학생들은 비대면으로 수업을 해도 과제가 있기 때문에 소녀상을 촬영하거나 활동하는 지킴이들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중고등학생이 많았다면 요즘은 대학생들이 많아요.
청년학생단체인 반일행동 입장에서는 더 좋을 수도 있겠어요.
두 경우 모두 좋은것 같아요. 2년전에 학교에서 소풍으로 서울을 와서 소녀상을 방문한 친구가 제가 했던 설명을 기억하고 반일행동의 SNS를 찾아보고 최근에 찾아왔던 친구가 있었어요. 청소년이었다가 대학생이 된 친구도 있고요. 끊이지 않고 방문이 이어지고 있어요.
지난4년 동안 무수히 많은 만남을 가졌을것 같아요. 대체로 큰마음을 먹고 소녀상에 오는 사람들일 텐데 그동안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면 어떤 인상이 있나요?
시민들로부터 받는 힘이 이루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커요. 더우면 물, 얼음을 주고 추우면 핫팩을 주는 등 생활적인 챙김이 있고, 늦은 새벽에 라이브방송을 할 때면 지킴이가 걱정돼서 함께 농성장을 지켜주기도 하고. 그래서 <지킴이들의 청춘을 기억하겠다>던 댓글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나의 20대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 같은데 기억해주겠다는 말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일본분들도 많이 오세요. 어느날은 일본학생이 너무 미안하다면서 찾아왔어요. 소녀상과 같이 사진을 찍어 드리겠다고 하니 <미안해서 소녀상과 같이 찍는 건 못하겠다>고 했어요. 일본사람이라고 하면 소녀상을 싫어할것 같고 역사를 잘못 알고 있을것 같고 그런데 그건 정부에 의해 잘못 생각하게 된 것이고 이문제를 제대로 알게되면 국적에 관계없이 가슴 아파하고 문제해결을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분은 활동을 하게 해서 미안한데 고맙다고 했어요. 왜 자기나라인 일본이 역사왜곡을 하면 안되는지, 군국주의를 하면 안되는지를 행동으로 일깨워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의 활동이, 우리의 농성이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다시 해볼 기회를 주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역사에 대해서, 평화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게 투쟁을 계속 하는 힘이겠어요.
맞아요. 그분들 앞에서 끝까지 하겠다고 했는데 이자리에 없으면 안되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에는 극우가 아닌데 역사를 잘못 알고 찾아오는 경우는 없었나요?
많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기억에 남는 고마운 시민들이 훨씬 많아요. 어떤 분은 몸이 정말 아픈데도 지킴이들을 보고자, 혹은 전날 친일극우들 난동이 심했을때 방문했는데 우리 손을 꽉 잡아주면서 <자주 못와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또 어떤 분은 농성장이 실외이다 보니 과자나 빵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길 바래서 손수 과일을 손질해 오기도 했고요. 우리 투쟁이 24시간 내내 이어지는데 밤을 같이 새는 분도 계세요. 반일행동의 농성투쟁이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도록 하는 힘이어서 <일본정부로부터 사죄를 받는 주축이 반일행동 학생들일 것>이라던 말씀도 기억나요. 꾸준히 지킴이들을 응원하고 함께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에요.
<계속투쟁하기로 했는데 이자리에 없으면 안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하지만 그것만이 투쟁하는 힘은 아닐것 같아요. 투쟁의 동력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다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인것 같아요. 투쟁하는 지킴이들의 표정이 다 밝고 힘차요. 즐겁게 투쟁하고 있어요. 다들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투쟁의 역사를 배우고 <나도 투쟁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친일극우, 친일경찰들의 만행에 대해서 같이 분노했어요. 일본정부의 파렴치한 행동, 군국주의 부활책동을 규탄하는 투쟁을 한몸처럼 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길수밖에 없는 투쟁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런 확신이 투쟁을 할수록 강해져요.
<민중과 동지들 속에서 찾는 확신, 그로부터 가지는 신념>인 거네요. 그걸 이렇게 표현할수 있다는게 지난 시간동안 만만치 않은 경험을 했겠다는 인상을 줘요. 농성을 해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것 같아요. 소녀상농성이 오늘날 반일투쟁에서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다면?
2000일동안 싸웠다는 기간으로만 봐도 볼수 있는게 있는것 같아요. 반일행동 이전에 반일투쟁은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잖아요. 반일투쟁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게 소녀상농성인것 같아요. 과거에는 친일파들이 우리 민족의 소녀들, 청년들을 끌고 갔다면 오늘날엔 역사왜곡을 이용해 일본정부를 찬양하도록 만들어요. 자신이 친일파가 아니고 <정치적견해>를 가지고 있는 거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거죠.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게 오늘날의 일본의 만행인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에 협력하고 동조하면서 우리민족의 역사를,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기도 해요.
소녀상농성이 처음에는 한일합의폐기와 박근혜퇴진 그리고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을 넘어섰어요. 일본군성노예제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의 군국주의부활이에요. 그것을 규탄하고 한반도에 전쟁없는 평화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어요. 평화의 날, 해방의 그날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 바로 소녀상농성입니다.
소녀상 농성이 가지는 의의가 반일행동의 투쟁목표겠어요. 그렇게 이야기했을때 사람들로부터 <농성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니에요> 같은 걱정을 자주 들었을것 같아요. 2000일 이후의 투쟁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더 강하다면 강하게 싸우지, 지금보다 작아지진 않을 거에요. 실제로 매일 청와대와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어요. 토요투쟁은 200회가 넘었어요. 다양한 시위를 일상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이 우리투쟁에 진정성이 있다는 의미인것 같아요. 앞으로는 일본군성노예제문제를 해결하고 그와 같은 전쟁범죄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전쟁을 반대하고, 왜 전쟁을 하면 안되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거에요. 이곳에서 반일의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낼 예정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군요. 반일행동이 하는 다양한 시위중에는 코로나시대의 객관한계를 뚫고 비대면으로 하는 투쟁도 있잖아요. 게다가 지난해 여름엔 날씨와 상관없이 하는 투쟁에 연좌시위를 결합했어요. 극우들의 난동에 저항해서 시작했죠? 민족반역무리들의 만행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다면?
연좌농성을 하기 전까진 이런식으로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날조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걸 몰랐어요. 그러다보니 저들의 행태가 비상식적인데 대해서 보고 들을 때마다 경악스러워요. 매주 수요일, 목요일 마다 할머니들의 투쟁을 폄하해요. 돌아가신 할머니 중에 성함 공개를 원하지 않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이름 석자를 공개해놓고 <피해자가 아니다>는 피켓을 들고 왔어요. 소녀상을 철거하고 폭파시켜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요. 소녀상 앞에는 할머니들의 이름을 새긴 <평화의 디딤돌>이라는게 설치돼 있는데 그걸 마구 짓밟기도 해요. 눈에 보이는 만행이 매주 있다보니 참 힘들죠.
올봄엔 이옥선할머니께서 수요시위때 이곳에 오셨어요. 할머니들의 투쟁을 폄하하는 극우들의 수요시위 방해가 일년이 다 돼가는 상황에서 할머니들이 연세가 많고 몸이 아프시니까 앞으로 수요시위 현장에서 보기는 어려울것 같다는 걱정을 갖고 저는 부끄럽기도 했어요. 극우들을 아주 차단시켜야 하겠는데, 이거리의 이름에 걸맞게 <평화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저극우들이 있어서 평화롭지 못하고 전쟁터가 연상되는 현실이요.
할머니들이 수요시위에 와서 <내가 피해자다. 내가 끌려가서 하루하루 고통스러웠는데 누구에게 사죄를 받아야 하냐. 왜 아직도 사과를 안하냐>고 증언을 하더라도 극우들은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총소리를 스피커에 틀어놔요. 할머니들의 발언을 거짓이라고 주장하고요. 경찰들은 그걸 방관하고 있죠. 참담했어요. 이장면을 보면 과연 우리가 해방을 맞았는가, 친일청산이 됐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수 없어요.
극우들은 또 소녀상지킴이들을 향해서는 인신비하, 외모비하, 성희롱, 조롱을 일삼아요. 언젠가는 물건을 집어 던진다든지, 소녀상에 앉기 위해 연좌농성하는 지킴이를 발로 찼어요. 차량돌진살해위협이 있었단 사실은 많이 알려졌죠. 그런걸 보고 저는 <이곳을 전쟁터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뭐라고 할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어요.
시민들이 찾아와서 <고생많다. 고맙다>고 하는 이유를 알것 같아요. 분위기를 바꿔서, 이제는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는 시민들 이야기를 해보고자 해요. 반일행동이 직접 진행한 <소녀상농성2000일 챌린지>에서 인상적인 답변을 하나 꼽는다면요?
<등대>요. 연좌농성은 그누구도 소녀상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앞장에 서서 전개했던 반일투쟁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냥 등대도 아니고 <망망대해 속 등대같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의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배들은 등대를 보고 다니잖아요. 바다에 떠다니는 배들처럼 반일투쟁을 하고자 하는 민중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같이 싸우자고 이야기 하는게 우리들 역할인것 같아요.
답변에서 책임감이 느껴져요.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영상이나 글로 보는 것보다 소녀상에 찾아오고 지킴이를 만나는 것이 시민들에게 색다른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처음 오는 분들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하곤 해요. 일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건 역사를 만드는 투쟁인데 결코 혼자 할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많이들 이싸움에서 이기고 싶어 하니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기고 싶은 분들은 소녀상으로 와주세요. 평화를 위해, 진정한 해방을 위해 함께 나아갑시다. 1400회 수요시위때 길원옥할머니께서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적 있어요. 많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날까지 싸우셨어요. 그싸움을 우리가 이어나가야죠. 이길때까지 하는 우리가 승리자 입니다. 소녀상에서 만나는 날을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