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뉴스는 희망나비전국대표에 이어서 20대초엽의 모든 시간을 투쟁에 바친 소녀상지킴이를 만났다. 소녀상지킴이는 <소녀상 옆에서의 시간은 소중한 선물이었다>고 기억했다. 지킴이와 함께 돌이켜 본 농성2000일은 평화를 염원하는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농성2000일까지 2일을 남겨둔 1998일차 소녀상농성장은 이른 6월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무한동력의 설국열차같았다. 반일행동 소녀상지킴이들이 농성을 멈출 때 세상은 볕들 날을 맞이할 것이다. 바로 전쟁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반일뉴스를 위해 자기소개 한번 해주세요.
2018년부터 소녀상지킴이를 해온 소녀상지킴이입니다.
2018년부터면 3년이나 지났어요. 그동안 문제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놀랍지만 20대 초반에 3년이라는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니 더 길게 느껴집니다. 소녀상방문을 참 많이 했을것 같아요.
매일 왔어요.
매일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초반에는 비닐로 만든 지붕이 있는 농성장이었는데 그땐 사람들을 만나는 마음으로 왔어요. 연좌시위를 하면서는 투쟁의 형태, 성격이 달라지다 보니 전처럼 사람들을 만나러 온다기 보다는 의무감으로 와요.
천막치고 농성 할 때는 사람 만날 기회가 많이 있었나봐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진 않았는데 농성장에 갑작스레 들어오는 시민들이 있기도 했어요. 수요시위가 있을때는 천막을 해체했다가 설치하다보니 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끌었어요. <여기는 뭐하는 데에요?>하는 질문도 받고. 우리투쟁을 알아보는 때가 좋았어요.
사람들이 소녀상농성을 주목하고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반일투쟁에 있어서 소녀상농성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나요?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철야시위>라는 말이 가지는 힘이 굉장히 강한것 같아요. 일대사관이 제가 있는 동안엔 항상 공사중이었어요. 일대사관이 트윈트리타워에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자리에서 농성을 했죠. 또 극우들이 아무리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해도 지킴이들은 그런 말엔 귀 기울이지 않아요. 굳건하게 투쟁하죠. 극우들이나 친일경찰들에 맞서며 반일투쟁을 해나가고 있어요.
소녀상지킴이가 스스로도 소녀상농성이라는 게 완강한 투쟁의 표본처럼 보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말로 들려요.
맞아요.
오늘은 날이 꽤 선선한데 올해는 6월초부터 무척 더웠어요. 지킴이는 햇수로 농성3년차인데 농성이 맞는 여름은 6번째에요. 더군다나 작년부터는 연좌농성이에요. 날씨에 상관없이 하는 투쟁이다보니 쉽지 않았을것 같아요. 그동안 어땠나요?
저는 특히 여름을 힘들어해서 연좌농성이나 1인시위나 여름이 늘 힘들었어요. 힘든 만큼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아요. 천막을 쳤을 때는 소녀상자리가 하루종일 볕이 드는 곳이라 천막을 한계절동안 해체하고, 지금은 자유연대가 차지한 공간에 그늘막을 쳐놓고 선풍기 하나 갖고 여름을 난 해가 있어요. 1인시위 할땐 우산을 쓰고 앉아있으면 시원한 음료수로 응원을 받아 힘이 나기도 했고요. 연좌농성을 할 땐 시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우산 하나, 의자 하나 사소한곳부터 큰곳까지 시민들의 손이 닿지 않은 데가 없어요. 매해 어떻게든 여름을 이겨내요.
쉽지 않은 일인데도 계속 투쟁할수 있었던 동력이라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요. 나 혼자 하는 1인시위였다면 절대 지금까지 하지 못했을 거에요. 형태는 1인시위이겠지만 옆에 뒤에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계속 했죠.
연좌시위를 하는 자리에서 지금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어요. 소녀상농성2000일이 되는 날이 연좌시위는 363일 되는 날이에요. 지난해 극성맞은 극우들에 대응하느라 시작한 시위가 연좌시위인데요, 반일투쟁 과정에서 겪은 민족반역세력의 만행을 고발해본다면?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서… 하지만 가장 심했던 때가 연좌농성을 시작할 때 였던 것 같아요. 개개인의 지킴이들의 신체적특징을 두고 조롱하는 극우들이 있었지만 지킴이들이 2000일동안 해온 게 있었기에 대범하게 넘길 수 있었어요. 제가 가장 화났던 일은 연좌농성이 정형화된 뒤로 <짝지TV>라는 극우유튜버가 스피커를 가져와서 2-3시간 떠들고 가곤 할 때였어요. 스피커를 이용해서 총성소리, 전쟁소리가 이거리에 울리게 했어요. 욱일기 뿐만 아니라 수요집회 때마다 와서 하는 망동들을 보면 제분노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말 그대로 호전광들이네요. 그러면 지금부터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해요. <소녀상2000일 챌린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답변은?
<선물>이요. 2000일동안 투쟁의 순간을 선물이라고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소녀상지킴이 활동 뿐만 아니라 지킴이들이 서로에 대해서 그리고 시민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것 같아요. 지킴이들이 시민들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함께 투쟁하는 지킴이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농성을 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을 텐데 그중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면?
트윈트리일대사관앞에서 1인시위를 할 때였어요. 그때도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1인시위를 하고 돌아올 때면 키가 큰 건물 사이에 난 샛길을 통해서 농성장으로 와요. 그런데 어떤 여성분이 저한테 달려오는 거에요. 손을 꼭 잡아주면서 <고생한다. 항상 보고 있다>고 말해줬어요. 지금은 얼굴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런데 응원해주던 목소리, 꽉 잡아주던 손의 힘, 온도 같은 건 기억에 남아있어요.
농성이 쉽지 않다보니 걱정하는 시민들을 많이 만났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앞으로 계속될 농성에 대해 포부를 밝혀본다면?
포부요? 날짜는 1000일이 됐을때부터 신경쓰지 않았어요. 900일때쯤 편지를 받았는데 초등학생들이 포스트잇에 지킴이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남겼어요. 거기에 <2000일이 되도 응원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 2000일까지 농성하는 건가?>하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어른이 되면 같이 농성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럼 이제 <초등학생이 어른이 될때까지면 몇년을 더 해야하지>하고 생각했어요.
날짜는 얼마가 되든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중요하기도 해요. 우리가 얼마나 완강하게 투쟁했는지를 보여주는 거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 하겠다고 밝히는 게 중요하지 않은거 같아요. 반일행동은 소녀상지킴이농성 뿐 아니라 반일투쟁을 하는 거니까요. 전쟁이 없는 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투쟁하겠다고 우리가 토요투쟁할때 많이 말해요.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될 때까지 소녀상지킴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투쟁하지 않을까요.
이외에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없어요.
농성과 하나가 된 것 같네요. 농성이 나고, 내가 투쟁이고.
소녀상지킴이들이 1인시위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이나 유튜브라이브를 통한 토요투쟁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투쟁을 하고 있어요. 또 기행프로그램을 하기도 해요. 많이 관심갖고 참여해주면 좋겠어요.